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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근씨는 앉아있는 남녀, 그들의 전통적 복장과 자세속에서 미를 추구하며 그것들은 잘 조화된 장식적 <스타일> 로 배치한다. 한국의 자기(滋器)를 연상시키는 그의 침잠한 백색과 회색의 <토온 조화> 는 조용함을 말하고 넓은 형식들은 힘을 말해준다.”

마리아 핸더슨_ 제 3회 현대작가전을 보고

이외에도 한국의 밀레라는 평을 받고 있는 선생님은 진실, 담백한 화풍을 그의 작품에 담고 있다.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든가 이웃을 사랑하라는 성경말씀을 늘 생각하면서 진실하게 살려고 애썼고 나의 고난의 길에서 인내력을 길러왔습니다.” 라고 신념을 말씀하시는 선생님은 1932년 18대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처녀입선을 한 이래 해마다 출품하여 계속 입선하였고, 해방 후 1953년 제 2회 국전에 특선을 하였다. 그이 작품활동은 꾸준하여 미국, 일본등의 외국미술전에 초대 출품(招待出品)을 수차 내었고, 1959년에 국전추천작가, 1962년에 국전 심사위원이 되었다.


오늘날은 50세의 중견작가가 되었지만 그는 소위 사치 예술로서의 미술과는 질적, 양적으로 다른 그야말로 신고(新古) 의 역정을 걸어왔던 것이다. 보통학교밖에 다니지 못한 선생님은 미술 독학하던 시절을 회상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 하신다.


“나는 강원도 양구군 농가의 장남으로 태어나 어렵지 않게 살며 보통학교엘 입학했는데 미술시간이 어찌도 좋았는지 몰라요. 제일 처음 선생님께서 크레용 그림을 보여주실 때 즐거웠던 마음은 지금껏 잊혀지지 않아요. 그러나 아버님 사업이 실패하고 어머님은 신병으로 돌아가시니 공부는 커녕 어머님을 대신해서 아버님과 동생들을 돌봐야 했습니다. 우물에 가서 물동이로 물을 들어와야 했고 망(맷돌)에 밀을 갈아 수제비를 끓여야 했지요. 그러나 나는 낙심하지 않고 틈틈이 그렸습니다. 혼자서 밀레와 같은 훌륭한 화가가 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드리며 그림 그리는데 게을리 하지 않았어요. 빚 값으로 한 채 남은 집마저 팔아버리고 온 식구가 뿔뿔이 헤어져 살 수 밖에 없게 되어 이후로 나는 춘천으로 평양으로 봉급생활을 하면서 작품 활동을 계속해 왔어요. 한때는 초상화를 그려 경제적 뒷받침을 하기도 했지요.”


초등학교 때의 소질을 발견하고 자신의 인생을 초지일관 그 위에 세우고자 곱고 끈기있게 온갖 빈곤과 위협에 싸워 온 박선생님의 자랑스런 인생회고담이라 하겠다. 박선생님은 한국의 전원풍경과 <절구질하는 여인> , <망가는 여인> 등을 많이 그렸는데 그의 고난의 생활과 모정을 반영한 것이나 아닐지?"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 . 학원. 1963년 8월호. P.1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