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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admin)
등록일
2011.08.30
조회수
2321
제목
[역사속의 강원인물, 그들이 꿈꾼 삶]박 화백의 고향 양구 정림리
2010-10-1 강원일보

그가 쓰던 스케치북·안경 … 천재작가의 흔적 고스란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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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속의 강원인물, 그들이 꿈꾼 삶]박 화백의 고향 양구 정림리


그가 쓰던 스케치북·안경 … 천재작가의 흔적 고스란히






국민화가 박수근(1914~1965년)화백이 태어난 양구군 정림리. 그곳 생가터에 들어선 박수근미술관은 높다랗고, 파란 가을하늘과 맞닿아 그 모습 자체가 미술작품이었다.


화강석을 깨고, 괴어 높게 쌓아올린 벽은 박수근의 작품에서 보이는 특유의 화강암 질감을 입체적으로 옮겨 놓은 듯 인상적이다.


미술관 벽면을 따라 난 길끝에는 넓은 풀밭이 보이고 멀리 박수근의 조각상이 동산을 뒤로하고 야트막한 언덕 위에 앉아 미술관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


1959년 서울 창신동 집 마루에서 부인과 막내딸 인애와 함께 찍은 흑백사진에서의 박수근 모습 그대로를 옮겨 놓은 것처럼, `앉아 있는 두 남자' 등 그의 작품 속에 등장한 보통의 사람 모습처럼 보였다.


그리고 그 아래로 흐르는 작은 냇가를 품은 풍경은 “대지에 미술관을 새겨 나간다”라고 말한 어느 건축가의 말을 떠올리게 했다.


미술관 입구의 카운터 옆에는 박수근의 실제 작품을 정교하게 인쇄한 그림들과 소품들을 파는 상점이 입점해 있는데 역시 국내 최고가로 팔린 `빨래터'는 비싼 가격에도 가장 잘 나가는 품목이라고 한다.


지난 2002년 10월 문을 연 미술관에는 두개의 전시관이 자리하고 있다. 그중 기념전시관은 박수근의 생전 모습을 담은 흑백의 사진이 한 벽면을 차지하고 있고, 다른 한쪽 면은 그의 연보로 가득 차 있다.


또 박수근이 그의 아내 김복순과 함께 아이들을 위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 동화책과 수집해 놓은 엽서, 박수근이 쓴 연하장, 그가 직접 새긴 도장, 그의 후원자였던 마가렛 밀러 여사 등 지인들이 보낸 서신, 그가 물감을 사고 받은 재료 구입 영수증 등 다양한 자료가 유리벽 아래로 가지런히 전시돼 있다.


자리를 옮겨 기획전시실로 향하니 박수근의 드로잉 작품 수십점이 정리돼 걸려있다.


미술관이 보유하고 있는 유화작품은 `노상' `앉아 있는 두 남자' `빈 수레' `굴비' `언덕 위의 풍경' 등으로 기증받거나 미술관이 예산을 들여 구입한 작품들이다.


드로잉 57점과 판화 100점을 비롯해 크레파스화와 색연필화, 수채화 등을 비롯해 박수근의 다양한 유품을 보유하고 있지만 군립미술관으로서 갖는 한계는 분명히 있어 보였다. 일반인들의 출입이 철저히 통제되고 있는 수장고는 박수근의 또다른 유품과 작품들이 보관돼 있는 곳이다.


박수근이 쓰던 안경, 뒷주머니에 꽂고 다녔던 자그마한 스케치북, 또 그림 공부를 위해 스크랩했던 많은 자료와 글로 옮겨 쓰며 연구에 몰두한 흔적들까지 다양한 종류의 유품들이 종류별로 정리돼 있었다.


엄선미 학예사는 “박수근 화백이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했던 사람인가를 그가 남긴 메모와 스크랩 등 유품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며 “그가 단순히 고등교육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기존의 사조에 편입되지 않았다는 말로는 그의 예술세계를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가 남긴 유품에는 공간과 시간미(時間美), 아방가르드에 대해 정의한 글을 빼곡히 정리한 메모를 비롯해 다양한 미술기법을 소개한 잡지와 스크랩 자료가 많이 남아 있다.


그가 서양의 사조에 흡수되지 않고 독자적인 화풍을 유지했던 것이 단지 교육을 받지 않았다는 것으로는 모두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을 남겨진 그의 흔적에서 찾을 수 있었다.


`못한 것'과 `안한 것'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어 보였다. 천재적인 재능 속에 부단한 노력까지 갖춘 진정한 그림쟁이의 모습 그대로 였다.


수장고를 나와 2층으로 통하는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외부로 통하는 유리문 하나가 나왔다.


길을 따라 미술관 맞은편 동산으로 올라가니 초입에 “우리의 화가 박수근 선생과 그의 아내 김복순 여사가 여기 고이 잠들어 계시다”라고 쓴 비석이 보였다.


비석을 지나쳐 조금 걷다 보면 양지바른 곳에 자리한 아담한 묘소 하나가 나오는데 바로 박화백 부부의 묘소이다. 그곳에 절을 올리고 돌아오는 길에 박수근미술관 표지석 위에 심어 놓은 녹음이 우거진 나무 한 그루가 눈에 들어왔다. 정림리의 가을을 알리는 이정표처럼 박수근의 작품 속 `나목(木)'이 화사하게 돌아온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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