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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admin)
등록일
2012.08.05
조회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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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홍준 "미국은 미술띄우기에 FBI까지 동원했는데 우리는.."










유홍준 "미국은 미술띄우기에 FBI까지 동원했는데 우리는.."
기사입력 2012-02-21 10:41


<이영란 기자의 아트 & 아트>



한국인들은 ‘국민화가’ 하면 박수근, 이중섭을 자연스럽게 떠올린다. 다른 작가들은 대체로 생소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박수근, 이중섭과 동시대에 활동했던 김환기(1913~74) 화백의 재조명 작업이 한창이다. 내년 작가 탄신 100주년을 앞두고 서울 사간동(경복궁 앞)의 갤러리현대가 마련한 ‘한국현대미술의 거장-김환기’전(2월 26일까지)에는 20일 현재 3만5000여명이 몰려들었다. 주말이면 삼청동 일대 교통이 마비되고, 화랑에는 길고 긴 줄이 이어지고 있다. 전시장에서 세 차례 열린 미술평론가 유홍준 교수(명지대)의 강연에는 너무나 많은 수강생이 몰려 사고가 날 뻔하기도 했다.







김환기의 고향인 전남 신안을 찾아가는 현장 탐방에도 신청 접수가 끊이지 않아 주최측은 진땀을 빼야 했다. 또 김환기를 세계에 알리기 위한 깔끔한 국영문 혼용도록도 발간(마로니에북스)됐고, 학계에서도 연구 움직임이 활발하다. 근 50년간 우리 화랑계에 몸담아온 갤러리현대 박명자 회장이 기획ㆍ연출하고, 미술계의 타고난 이야기꾼 유홍준 교수가 특별출연한 ‘김환기 주연의 회고전’은 불황의 그늘이 짙게 드리워진 우리 미술계에 반가운 훈풍을 불어넣고 있다. 이쯤 되면 가히 ‘김환기 붐’이다. 쉽고도 흥미로운 강연으로 앙코르를 두 차례나 받은 유홍준 교수의 특강을 지상중계한다.







“우와, 오늘 강연엔 더 많이들 오셨네요. 제가 얼마 전 ‘1박2일’(TV 프로그램)에 나와서 그런가요?(웃음) 반갑습니다. 김환기에게 이토록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 놀랍네요. 아마도 김환기 팬은 수준이 더 높을 겁니다. 박수근은 우리에게 익히 알려진, 대단히 친근한 작가이지만 김환기는 덜 알려졌고 추상미술을 많이 한 작가이니 말입니다. 이 곳 갤러리현대 전시장을 찾은 관람객들은 ‘이렇게 높고, 멋진 세계에 도달한 한국 작가도 있었네요’라며 감탄합니다. 김환기가 이런 세계에 도달한 것은 문제의식을 갖고 끊임없이 도전했기 때문이죠.







전남 신안의 부유한 가문 출신인 김환기는 중동중학을 나와 일본에서 고교를 졸업했어요. 고교시절 일본의 ‘이과(二科)전’에 출품해 당선됐을 정도로 일찍부터 재능을 인정받았죠. 당선 사실이 신문에도 실렸고요. 그 작품은 엽서로 남아 있습니다. 이후 고국으로 돌아와 그룹활동을 했고,1941~45년에는 고향 섬에 숨어지냈어요. 일제의 징용에 끌려가지 않으려고요.



해방 후에는 정지용 이태준 등 문인들과 교류하며 문장지 삽화를 많이 그렸어요. 서울 성북동의 근원 김용준 선생의 집을 건네받아 살았는데, 환기는 문인과 음악인들과 교류하길 좋아했어요. 그만큼 인문적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죠. 기본강령 속에서 시대 흐름을 읽을줄 아는 사람이었습다.







특히 우리의 도자기와 목기를 엄청나게 사랑했습니다. 그는 ‘내게 한국미를 알려준 건 조선 백자다. 리어카에 잔뜩 쌓인 이렇게 좋은 백자 항아리들을 사람들이 왜 안 사는지 모르겠다. 별로 비싸지도 않은데...’라며 무척 안타까워했습니다. 6.25동란이 나자 김환기는 그동안 열심히 모았던 도자기들을 성북동 집과 우물에 묻고 피난을 떠났죠. 나중에 돌아와보니 거의 박살이 났죠. 그런데도 "웬지 통쾌하다"고 했습니다.







근원 김용준은 미술사를 이론으로 배웠지만 김환기는 한국미술을 미술사로서가 아니라, 필링(feeling)으로 느꼈죠. 화실에 추사 현판을 걸어놓고 지냈고, 차분한 걸 좋아했어요. 문기있는 걸요. 김환기의 구장품 중에는 사방탁자, 백자필통, 각병 등이 있었는데,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기도 했어요. 모두 한국적인 정취를 구현한 것들이죠. 우리 미술의 덤덤한 아름다움, 그 진수를 받아들인 셈이죠. 최순우선생 보다 먼저 백자 달항아리의 미감을 알아채고 사랑한 사람이 김환기죠.












여기 1949년 작 ’백자와 꽃’을 보세요. 항아리와 산, 매화를 그린 그림인데 구상에서 추상으로 가는 길목의 그림으로 당시 이만큼 잘 그린 그림이 없습니다.종군화가로 활동했던 김환기의 1951년작 ’피난열차’는 파울 클레 식으로 전쟁을 그렸어요. 마치 어린이의 그림 같지만 모더니즘의 재해석이죠.



그는 민족적 서정을 현대미술의 모더니즘 속에 어떻게 구현할까 치열하게 고민했던 작가입니다.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소재, 즉 사슴 학 여인 항아리 산 달을 절묘하게 그렸죠. 모두 민족적 서정이 담긴 겁니다. 김환기는 성실한 작가였고, 표현에 있어 귀신이었습니다. 센스도 남달랐고요. 그의 그림은 귀티가 나죠. 텍스추어와 색감도 압도적이고요.







서울대 교수를 거쳐 홍익대로 옮겨 한국미술협회 이사장이었던 김환기는 상파울루 비엔날레측으로부터 ‘한국작가를 보내달라’는 소식을 접하곤 자기가 커미셔너가 돼 자신을 직접 천거했습니다. 요즘 같으면야 문제 소지가 많겠지만 그 때(1960년대초)만 해도 비엔날레가 뭔지,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을 때였어요. 그는 넓은 무대에 꼭 나가고 싶었고, 결국 특별상을 받았습니다. 거기서 미국 작가 아돌프 고틀리프의 작품을 보곤 예술인생의 전환점을 맞습니다. 서울에서 이뤘던 모든 걸 버리고, 무턱대고 뉴욕으로 날아갑니다. "가자, 나가서 싸우자!"라고 다짐하면서요. 그의 나이 쉰살이었습니다. 부인인 김향안 여사가 부랴부랴 뒷수습을 하고, 뉴욕으로 건너와 환기를 도왔죠.







참, 우리는 김향안(본명 변동림) 여사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천재 시인 이상(李箱)과 천재 화가 김환기를 동시에 키워낸 인물이니까요. 향안 여사는 이상과 3개월을 살았고(결혼 석달 후 이상은 요절했다), 이후엔 김환기와 결혼했습니다. ‘20세기 최고 가는 작가와 화가’ 둘을 품어낸 사람이니 연구할 필요가 있죠.











내가 1978년 ’공간’ 잡지에 근무할 때 김환기가 향안 여사에게 보낸 편지를 연재했더랬습니다. 얇은 미농지에 써서 보낸 환기의 편지를 동료였던 박여숙 씨(현 박여숙화랑 대표)와 함께 일일이 원고지에 옮겨, 잡지에 싣곤 했죠. 향안 여사는 이후 서울 종로구 부암동에 ‘환기미술관’을 만들고, 그의 예술세계를 알리는데 힘을 쏟았습니다. 여러분께 김향안의 수필집 ‘월하의 마음’의 일독을 권합니다. 







뉴욕으로 무작정 건너간 김환기는 록펠러 여사가 후원하던 뉴욕의 ACC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많은 변화를 시도합니다. 1968년초에는 "점인가 섬인가? 선 보다 점이 개성적인 것 같다"며 무수히 많은 점들을 찍어가며 형태를 만들었습니다. 이만큼만 했어도 김환기는 대단했는데 거기 서 훌쩍 더 나갔죠. 미니멀아트에 경도돼 더욱 단순해지고, 더욱 압도적이 됐습니다.







난 김환기가 미국의 색면추상화가 마크 로드코에 결코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은 FBI까지 동원해 액션페인팅의 작가 잭슨 폴락을 월드스타로 키웠는데 우리도 김환기를 세계로 키워야 합니다. 로드코와 엘스워스 켈리, 김환기를 묶어 세계순회전을 열어야 합니다. 김환기 추상은 그들과 동시대에 이룬 것이니까요. 김환기는 로드코와 맞짱을 뜰 수 있는 작가입니다. 우리 정부 1년 예산이 325조, 4대강 유지관리하는데 연 4조원이 든다는데 이런 의미있는 전시에 정부가 눈을 돌려야 합니다.







김환기의 ’10만개의 점’이란 작품을 보세요. 정말 끔찍스런 인생입니다. 그는 "아침부터 뻐꾸기를 생각하며 종일 푸른 점을 찍었다"고 일기에 썼습니다. 고국의 오만가지를 생각하며 찍은 점이죠. 그래서 그림에선 뻐꾸기 소리, 갯벌 소리가 들립니다. 밀도가 있습니다. 미국의 로렌스 캠벨이라는 평론가는 장엄한 혼돈의 세계, 마치 풀밭을 바라보는 것 같다고 했더랬죠. 김환기의 대표작인 "어디서 무엇이 되어 만나랴"는 한국의 아름다움을 현대의 미감으로 버무려낸 최고의 작품이죠. 우리 작가 중 가장 탄탄하게 추상의 세계를 구축했고, 글로벌 무대도 가장 먼저 공략했던 선구자가 김환기입니다. 그의 예술세계를 제대로 조명하고, 늦었지만 제대로 대접하는 일이 우리에게 남겨진 숙제입니다.







<정리=이영란 선임기자> / yrlee@heraldm.com. 

<사진=이상섭 기자> / bat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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