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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admin)
등록일
2012.03.21
조회수
814
제목
[전시 평론]박수근 마을에 온 ‘거리의 악사’

박수근 마을에 온 ‘거리의 악사’


엄선미_ 박수근미술관 학예연구실장

개인 작업을 하는 순수 창작 예술인들에게 있어 창작스튜디오는 매우 기초적이며 중요한 요소다. 생전에 창작공간이 따로 없었던 화가 박수근이 자신의 집 안방과 마루를 오가며 작업에 몰두했을 때와 비교해 보면 현대의 작가들은 그나마 많은 혜택을 누리고 있는 듯 보인다. 그도 그럴것이 기초예술인에 대한 대안적인 문화예술정책이 한참 물오를 즈음 창작스튜디오 지원의 타당성이 제기되었고 이로 말미암아 국내·외 곳곳에 창작스튜디오가 설립·운영되기 시작했다. 예술작품 생산과 더불어 일반 대중과의 소통과 이해라는 목표 아래 국가차원의 예술가 지원과 대안적인 예술 활동을 위한 창작스튜디오 프로그램은 안정적으로 정착되어가고 있다. 바야흐로 이러한 취지와 시점에 맞추어 예술과 도시, 예술과 건축, 예술과 사람이 만나 이루어 낸 결과물이 ‘정림리창작스튜디오’와 ‘갤러리’다.

국내 대학교 건축과 학생들로 이루어진 자원봉사 동아리와 그들을 이끄는 주대관 소장(문화도시건축연구소)이 뜬금없이 시골 마을에 창작스튜디오를 짓고 양구군에 기부 채납했을 때 지역주민들은 내심 의아해 했을 것이다. 박수근미술관이 그의 생가터에 지어질 때와는 사뭇 다른 이해의 척도가 있었을 뿐만 아니라 일반 사람들은 정림리창작스튜디오가 ‘서민들의 진실함과 소박한 일상을 그리고자 애썼던 화가 박수근의 한이 깃든 아뜰리에 Atelier’ 라는 메타피지컬 metaphysical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이해할리 만무였다.
전업 작가로서 창작 공간 없이 작업에 몰두했던 박수근의 삶과 예술세계를 이어가는 현대작가를 발굴하고 지원하는 것. 바로 이것이 정림리창작스튜디오의 비젼과 정체성이며 작가 정현우가 이곳에 입주(거주)하고 있는 타당한 이유다.

정현우 작가의 고향은 강원도 양구다. 박수근과 동향인 그는 지천명 地天命을 지나 이순 耳順을 바라본다. 하늘의 명을 알아듣고 귀를 순리대로 듣는 나이가 되어 고향으로 다시 돌아 온 정현우 작가를 알고 지낸지는 8년쯤 되는 것 같다. 당시 나는 대학원을 다니며 박수근미술관 인턴큐레이터로 근무하고 있었고 춘천미술관 입주 작가로 있던 그는 춘천미술관에서 ‘거리의 악사’라는 테마로 개인전을 열고 있었다. 그의 작품을 처음 보는 순간 마치 박수근 작품을 대할 때 느끼는 정겨움과 소박함, 말할 수 없는 따뜻한 정서를 느꼈고 나도 모르게 그에게 말을 걸었으며 급기야는 궁색한 지감을 털어 작은 작품 한점을 구입하고 말았다. 이를테면 박수근 작품이 왜 좋으냐고 물으면 딱히 말할 수 없는 그 어떤 편안함과 친근함... 그런 느낌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작년 가을 즈음 박수근 선생님의 맏딸 박인숙 선생님이 미술관에 다녀가셨다. 이 곳 저 곳 시설물을 둘러보고 레지던스 프로그램을 소개하던 중 정현우 작가의 스튜디오를 방문하게 되었다. 그의 작품을 보시고는 아버지 작품의 소박함과 따스함이 느껴지신다며 소녀처럼 너무 좋아하셨고 소장하고 싶어 하셨다. 잠시 머무시는 동안 그가 기타를 치며 ‘모란동백’ 과 ‘제비꽃’ 노래를 부를 때는 추억에 잠기기도 하셨다. 그리 오래지 않아 박인숙 선생님은 자신의 작품과 정현우 작가의 작품을 맞교환하셨다.
“아버지 고향 마을에 아버지의 소박한 정서를 닮은 작가가 있어 든든하고 고맙다”는 박인숙 선생님의 말씀은 다시 고향으로 돌아 온 정현우 작가의 창작 활동에 윤활유가 되었으리라.

‘굴렁쇠를 굴리는 아이’, ‘자전거를 타고 가는 아빠와 아이’, ‘하모니카를 부는 사람’ 등과 같이 그동안 정현우의 작품들은 보편적인 사람들의 소박한 일상과 기억을 들추어내고 이를 통해 향수를 불러일으키곤 했다. 그러나 이번에 전시되는 작품들은 과연 ‘박수근 마을에 내리는 고요’처럼 조용하고 명상적이다. 구체적이지 않은 인간의 형상은 열반에 든 부처처럼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거나 동화 <행복한 왕자>에서 처럼 새에게 떠나지 말고 소원을 들어주며 함께 있어달라고 빌기도 한다. ‘꾸꾸루꾸꾸꾸’...사랑과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가 되어 하늘 높이 날고 싶어 하는 작가의 모습이 투영되기도 한다.
소, 나무, 사슴, 나비, 자전거 등과 같은 사물들의 형상은 흡사 플라톤 Plato의 <동굴의 비유>에서 동굴 벽에 비친 그림자 같기도 하다. 작가는 보여 지는 실재 형상의 불완전함 저 너머에 있을 그 모든 것들의 진실과 피안의 세계에 대해 이미 알고 있는 듯하다. 흔히 무덤가에 많이 서식하며 일상 속에서 서민들의 약재로 널리 활용되는 ‘오이풀’이 그의 작업실에 드라이플라워 Dry Flower의 형태로 곱게 장식되고 어느새 작품에 등장하는 불안전한 형상들을 한결같이 감싸고 있는 것은 이순 耳順을 바라보는 작가를 생각했을 때 또 다른 의미로 다가 온다.

산 속에 있던 작가의 작은 움막 작업실이 산사태로 쓸려간 후 박수근 마을 정림리창작스튜디오에 입주한지 2년이 되어간다. 그동안 그는 시를 짓는 사람들과 함께 시화전을 열어 박수근 마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기도 했으며 지역 예술가들과 함께 마을 어르신들이 그린 그림들을 이용해 ‘수근수근’ 까페 라는 쉼터를 만들기도 했다. 박수근미술관 교육프로그램의 일환으로 그가 그린 동화책의 내용을 아이들에게 들려주고 함께 예술체험교육을 하기도 했다. 박수근이 가장 사랑했던 서민들의 일상 속으로 고향 후배 작가 정현우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의 예술적 기질과 재능을 기부해 박수근 마을을 변화시키고 있다.
지역 문화자원을 발굴하고 지원·육성하는 것이 사회· 경제적인 발전과 부가가치를 생산해 낸다는 이론 아래 이웃 지자체들이 이를 실천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정현우 작가 역시 이러한 취지와 기대 속에서 지역 사회가 지켜야 할 문화자원 중에 한명임은 분명할 것이다.

박수근 마을에 봄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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