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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낸 사람 박수근
작성자 관리자 날짜 2022-01-27 17:23:36 조회수 329
평론가 최종태

20세기 한국 미술 백 년의 역사 속에서 곡한 사람의 예술가를 골라내라 한다면 나는 화가 박수근(朴壽根)을 들 것 같습니다. 왜 그러냐를 따지기에 앞서서 우선 그렇게 심증이 가는 것입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지 삼십 년이 됐대서 회고전을 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다시 보는 박수근의 그림들은 더욱 찬란해 보였습니다. 대개의 경우 세월이 가면 기운이 바지고 퇴색해 가는 것이 상례인데, 박수근은 해가 갈수록 더욱 좋아지는 것입니다.

화가 박수근을 생각하면 인물이란 하늘이 내는 것이지 인력으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박수근은 가정이 어려워서 초등학교밖에 못 나온 사람입니다. 그러니 미술교육을 받을 기회도 있을 수 없었거니와 또 특별한 안내자를 만나기도 어려웠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강원도 산골 소년이 그림을 감히 그린다고 마음 먹었느냐 하는 것도 희한한 일입니다.

그가 순전히 독학으로 그림공부를 하다가 전람회에 출품한 것이 입선으로 뽑혔는데, 열여덟 되던 해의 일입니다. 1932년 당시 조선미술전람회에 입선이 되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습니다. 그 그림은 시골 봄풍경인데 <이른 봄>이라 이름 붙인 작품이었습니다. 그것도 참으로 이상한 일입니다. 박수근은 일생 동안 여름풍경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늦은 가을풍경으로부터 시작해서 꽃이 말 터져 나오는 이른 봄까지입니다. 새 풀이 막 돋아날 때, 잔설이 아직 산자락에 남아 있을 때의 조춘풍경(早春風景)으로 시작해서 조춘풍경으로 끝난 박수근입니다. 그의 그림에는 신록의 화창한 풍경이 없습니다. 무성한 여름이 없습니다. 화려한 단풍도 없습니다. 낙엽이 다 진 늦은 가을, 그리고 눈이 아직 다 녹지 않은 햇볕 그리운 봄까지입니다.

왜 그렇게 되었는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운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가 처음부터 ‘나는 이른 봄풍경만을 그리리라’하고 작정한 것이 아닙니다. 애써 찾고 찾아간 일생이 그렇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박수근으로 하여금 그렇게 운명지운 것인지, 박수근이 발견한 세계가 그것인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람은 태어날 대 운명적으로 어떤 일이 주어져 있는 것 같습니다. 20세기 백 년의 한국 미술사 속에서 가장 중요한 그림이 어째서 박수근 같은 처지의 사람한테서 나오게 되는 것인가. 일본 유학, 유럽 유학 갔다 온 조건 좋은 화가들이 많았는데 말입니다. 그렇게 볼 대 인력의 한계란 것을 느낍니다. 후천적인 것 또는 노력의 한계 같은 것으로 느낍니다. 어느 분야에서든지 백 년의 역사 속에서 한 사람이라는 것은 인력의 너머에서 조정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되는 것입니다. 조선시대 오백 년을 보면서 사람들은 겸재 정선(鄭敾)과 추사 김정희(金正喜)를 이야기합니다. 오백 년에 두 사람입니다. 얼마나 무서운 일입니까. 이것이 어지 인력으로 될 일이겠습니까.

박수근은 그 처지가 형편이 없어서 남들처럼 욕심낼 수가 없었습니다. 한국에서 제일가는 예술가, 도는 세계적인 화가가 되겠다고 욕심낼 수가 없었습니다. 단지 좋은 그림을 만들고 싶었을 것입니다. 학벌이 없으니 좋은 취직자리를 욕심날 수도 없었고, 자기를 인정해 주지 않는 서울 화단이 야속했겠지만, 그는 싸울 기운이 없었습니다. 고고하게 그림을 안 판다고 할 수도 없었습니다. 달리 재주가 없으니 그림으로 먹고 살아야 했습니다. 오직 술로 마음을 달래면서 좋은 그림 만들려고 정성을 다했습니다. 달리 무슨 욕심을 낼래야 방도가 없는 것입니다. 거기가 박수근의 자리였습니다. 하늘은 박수근을 골랐습니다.

박수근은 쉰하나의 나이로 1966년 타계했습니다. 그의 그림은 대체로 50-60년대에 제작되었습니다. 대충 보건대 십오 년간 그린 것입니다. 육이오 전쟁과 그 상처가 겨우 정리될 무렵의 십오 년간의 시간이 이른바 박수근의 역사적인 시간이었습니다. 이 시기는 한국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시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개화의 시대를 맞으면서 이내 식민지 생활을 해야 했으며, 해방이 되자 정신 차릴 새도 없이 남북의 동족전쟁으로 휘몰렸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세계를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미술이 세계미술의 판도 속으로 뒤어들게 되었던 것입니다. 어찌 보면 대전환의 시대였습니다. 조선시대가 끝났고 새로운 시대가 도래했으며, 그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사상으로 새로운 예술을 창출해야 하는 시기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금 관심갖고 있는 문제는 완당(阮堂) 김정희 이후에 누구냐 하는 문제인데, 그런 역사적인 시각에서 박수근을 보아야 합니다.

박수근은 초가집과 더러 기와집을 그렸습니다. 조선 옷 입은 아낙네를 그렸습니다. 고목나무를 그렸습니다. 이런 풍경은 당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아주 흔한 풍경이었습니다. 너무도 흔한 것들이어서 사람들은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신식 집들이 세워지고 신식 옷들이 눈에 띄는 시대였습니다. 그런데 박수근은 그 흔한 그리고 진부한 듯한 풍경들에 마음이 끌려서 일생 동안 매달린 것입니다. 박수근이 그려 놓지 않았으면 미의 세계에서 잊혀질 뻔한 사물들이었습니다. 어재서 그토록 혼신의 애정을 거기에 쏟아부었는지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그 사실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회화의 양식으로 완전하게 성공시킬 수 있었다는 데에 박수근의 위대함이 있습니다.

박수근의 그림은 세계미술사에서 그 누구의 그림과도 닮지 않았다고 하는 것도 별난 일이지만, 그것이 나무랄 데 없는 보편성을 갖고 있는 것, 그것이 박수근 회화의 높은 양식입니다. 어찌하여 박수근 같은 불운한 처지에 잇는 시골뜨기 화가한테서 저런 위대한 양식이 만들어졌는가. 꼭 기적만 같습니다. 그가 그것을 알고 있었을까. 이토록 위대한 그림이 될 줄은 자신도 미처 모르고 있지 않았을까.

지금은 한국에서 최고로 비싼 그림이지만 화가는 돈을 쓰지도 못하고 갔습니다. 그런 걸 보면 그림이란 결코 그린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좋은 그림은 세상의 것입니다. 무릇 가치는 개인의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하기사 우리가 그토록 아끼는 재물이란 것도 죽을 때는 다 놓고 가는 것입니다. 그러니 화가는 그린다는 그 자체로 이미 보상을 받은 것입니다. 반 고흐는 살아서 자기 그림을 한 점도 못 팔았습니다. 누가 더 훌륭한 사람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진실로 진실했던 점에 있어서는 둘이 아주 닮았습니다.

박수근의 그림은 우선 소박합니다. 그리고 조용합니다. 부담없이 편합니다. 따뜻합니다. 경건함이 있습니다. 어둡지도 밝지도 않은 화면 가운데 속으로부터 배어나오는 빛이 있습니다. 그것은 맑고 환한 빛입니다. 그의 그림은 슬프지도 않고 또 즐겁지도 않습니다. 잘 보면 둘 다 있는 듯싶습니다. 잘 보면 그 시대의 아픔과 기쁨도 있는 듯싶습니다. 슬슬한 듯도 합니다. 깨끗합니다. 단순합니다. 인자함이, 그런 기풍이 잇습니다. 예리함과 섬세함은 속으로 감추고 있습니다. 사람의 손으로 그렸다기보다 그렇게 된 것처럼 보입니다.

한국 사람 그림 중에 아마도 토종 냄새가 가장 짙은 그림일 것입니다. 삶의 드라마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요약이 된다면 ‘사랑’입니다. 아! 푸근한 사랑. 그것이 박수근입니다. 한국 사람의 정서가 완전토록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란 말이 딱 어울리는 것이 박수근의 경우입니다. 박수근의 그림 속에는 우리 민족의 모든 점이 다 들어 있습니다. 그 좋은 점이 다 들어 있습니다. 박수근의 그림이 가장 민족적이란 것을 누구도 부인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당대의 가장 위대한 그림이란 것도 부인할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박수근을 생각함에 있어서 특히 이 점을 눈여겨 보아야 할 일로 생각합니다.

박수근은 출신도 서민이거니와 살기도 보통 사람으로 살고 그림도 소외된 민중적인 데를 주제로 잡았습니다. 양반 냄새가 없어서 친근감이 더한 것인지도 오릅니다. 조선시대 민화와 맥을 함께 하여 더욱 부담없이 편안합니다. 그런 점 때문에 그림이 한층 건강하게 나타난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림이 어떤 이론으로 무장된 것 같은 인상도 없고 멋을 부린 흔적도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더할 수 없는 정성스런 촉감, 참으로 그 표현의 절묘함을 무어라 말로 하랴. 언어가 모자랍니다.

참되도다, 착하여라, 그리고 아름다워라. 이것이 박수근의 그림입니다. 그야말로 진과 선과 미, 그 어는 쪽에도 치우침이 없습니다. 진정으로 진실하여 온 화면에 자비가 넘칩니다. “네 온 마음으로, 네 온 영혼으로, 네 온 힘으로, 네 온 정신으로 너의 하느님이신 주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한다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씌어 있는 성경 말씀대로입니다.

“천당이 가까운 줄 알았는데 멀구나.”

그 말을 마지막으로 남겨 놓고 그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박수근은 분명 죽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분명 그는 살아 있습니다. 그는 분명 하늘이 낸 하늘의 아들입니다. 그의 그림 안에는 영원이라는 모습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이상, 그 최고의 목표는 사랑과 평화입니다. 박수근의 그림은 그것을 유감없이 나타내고 있습니다. 우리들에게 삶에의 희망과 용기를 줍니다. 생의 기쁨을 알게 해줍니다. 이 모든 것이 하늘의 소리가 아니고 무엇입니까.

한 나라 백 년의 역사 속에서 한 사람의 예술가라 하는 것은 인력의 한계를 넘어서 있는 사람입니다. 하늘이 냈다 할 수밖에 달리 설명이 불가능한 일입니다.

 

최종태, 『나의 미술, 아름다움을 향한 사색-최종태의 예술 이야기』, 열화당, pp.3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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