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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박수근

화가 박수근의 삶과 예술은 [서민의 화가]라고 한마디로 요약된다. 그는 곤궁한 시절에 힘겹게 살아갔던 서민화가 그 자체였다.

1914년 강원도 양구 산골에서 태어난 박수근은 가난 때문에 국민학교밖에 다닐 수 없었다. 6.25동란 중 월남한 그는 부두 노동자, 미군부대 PX에서 초상화 그려주는 일 따위로 생계를 유지했다. 그 힘들고 고단한 삶속에서도 그는 삶의 힘겨움을 탓하지 않고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서민들의 무던한 마음을 그렸다. 절구질하는 여인, 광주리를 이고 가는 여인, 길가의 행상들, 아기를 업은 소녀, 할아버지와 손자 그리고 김장철 마른 가지의 고목들...

그는 예술에 대하여 거의 언급한 일이 없고 또 그럴 처지도 아니었지만 그의 부인 김복순 여사가 쓴 [아내의 일기]를 보면 [나는 가난한 사람들의 어진 마음을 그려야 한다는 극히 평범한 예술관을 지니고 있다]고 말한 적이 있다.

화가의 이러한 마음은 곧 그의 예술의지가 되어 서민의 모습을 단순히 인상적으로 담아 내는 것이 아니라 전문용어로 말해서 철저한 평면화작업을 추구하게 되었다. 주관적 감정으로 파악한 대상으로서의 서민 모습이 아니라 모든 개인의 감정에서 독립된 완전한 객체로서의 서민이다. 거기 그렇게 존재하고 있다는 [존재론적 사실주의]를 지향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박수근의 그림은 부동의 기념비적 형식이 되었으며 유럽 중세의 기독교 이론과 비슷한 성서의 분위기가 감지되고 화강암 바위에 새겨진 마애불처럼 움직일 수 없는 뜻과 따뜻한 정이 동시에 느껴진다.

그리하여 박수근은 가장 서민적이면서 가장 거룩한 세계를 보여준 화가가 되었고 가장 한국적이면서 가장 현대적인 화가로 평가되고 있다.

[朴壽根 1914-1965] (1985. 열화당)에서 발췌.

박수근과 양구

박수근 선생은 1914년 강원도 양구 정림리에서 태어났습니다. 보통학교 시절부터 그림 그리는 재주가 뛰어났던 그는 12세때 밀레의 <만종>을 보고 깊은 감동을 느껴 그와 같은 화가가 되기 위해 기도했다고 합니다.
이후 가세가 기울면서 생활은 곤궁해졌지만 박수근 선생은 가난한 서민들의 소박한 삶을 그리는 화가의 길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양구는 박수근 선생이 평생을 바쳤던 그림에 대한 열정과 꿈이 시작되었던 곳입니다. 그가 수없이 스케치했던 나무와 일하는 여인, 나물 캐는 아낙, 빨래터...

양구는 그 모든 흔적을 담고 있으며 맑고 깨끗한 자연만큼이나 선한 심성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박수근 나무

양구보통학교 뒷동산이었던 곳에 보통학교 시절 박수근 선생이 자주 그렸던 300년 수령의 느릅나무 두 그루가 있습니다.

양구군에서 보호 관리하고 있는 이 고목들은 양구 교육청 뒤편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박수근화백 기념공원

비봉산 등산로 초입에 위치한 비봉공원 박수근화백기념공원에는 1990년에 설립된 박수근 선생의 동상이 있습니다.